손으로
바람이 많이 불던 날이었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바람 소리가 살아 있는 생명의 울부짖음처럼 생생하게 들렸다. 여럿이 모여 함성을 지르는 것 같은 바람 소리는 굵고 위협적이었다. 바람 소리에 이끌려 일없이 바깥으로 나가보았다. 텅 빈 거리에서는 나를 홀린 바람 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소리가 사라진 그곳에서 나는 바람을 보았다. 미친 말들이 갈기를 휘날리며 날뛰듯 하는 바람의 모습을 분명히 보았다. 거칠게 불어대는 바람 한가운데서 정작 나는 고요해졌다. 한순간도 멈출 줄 모르던 마음속 소용돌이가 태풍의 핵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라도 한 듯 잠잠해졌다. 사람은 없고 오직 바람뿐인 그곳에서 나는 제법 오래 서 있었다.
이 그림은 그날 내가 보았던 바람을 그린 것이다. 붓으로 그리기에는 마음이 급해 손으로 그렸다. 만져보고 싶었지만 만져지지 않았던 바람을 손으로 그리면서 다시 바람을 느껴보고 싶었다. 한쪽 손만으로는 부족해 양손으로 그렸다. 아니, 온몸으로 그렸다. 하지만 바람은 끝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어떤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정작 그리고 싶었던 바람은 그리지 못하고, 이미 달아나 버린 바람을 미친 듯이 좇던 손짓만 하나의 그림으로 남았다. 이 그림을 본 사람 중 한 사람은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신경질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고 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누군가는 갈대숲이 연상된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여름을 표현한 것 같다고 했다. 내가 무엇을 의도하며 그렸든 보는 사람이 느끼는 대로 느끼면 그만인 것이 그림인 것 같다. 각자 나름대로의 마음으로 그림을 보는 그들에게, 이런 글로써 그림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는 것이 어쩌면 실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