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
내가 읽은 소설 중에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읽은 첫 소설이 바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었다. 한탄과 자조로 일관된 생의 한가운데서도 어김없이 번득였던 밀란 쿤데라의 유머는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삶도 우습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많은 인간이 그렇게 살고 있는데도 제대로 고발당한 적 없는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능청스럽게 적발하는 밀란 쿤데라의 솜씨도 가히 경이로웠다. 뿐만이 아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찔리고 아프면서도 후련해지는 쿤데라의 소설은 읽는 재미까지 있어 우울하던 1980년대를 그나마 견디게 해주었다. 극단적인 삶의 순간에조차 가볍기 짝이 없는 소소한 일상과 연결되어 있는 쿤데라의 소설 속 인물들을 보면서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구체적이고 일상적이며 육체적인 삶의 면면을 사랑했던 밀란 쿤데라가 시가 아닌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듯이 나 역시 시만으로는 도저히 메울 수 없는 삶의 산문성에 이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 속에서 서로 끝없이 포개지고 얽히면서 드러내는 인간의 모습은 몹시 기이하고 부조리해서 한마디로 요약하거나 설명할 수가 없다. 때문에 그것을 드러내 보여주기 위해서는 시보다는 자유로운 형식의 소설이 적절할 것 같았다.
밀란 쿤데라는 어차피 실패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그 패배를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 소설의 존재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답이 없는 삶에서 답을 찾느라 애쓰는 대신 차라리 그냥 살아라, 라고 말하는 쿤데라의 메시지를 이 그림에 담았다.